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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時節因緣) 2020.5.30 구미 보릿대에 약간의 푸르스름한 끼가 남아았을 즈음 바람이 불어오면, 황금색과 한데 엉켜 춤 추는 모양이 가히 절경이다. 흔들리는 보리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듯한 가벼운 White Noise는 나의 귀를 간지럽히고 쏟아지는 햇발 아랑곳 하지않은 채로 고랑 사이사이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한데 섞여 즐거운 기운까지 한 가득 담겨, 시대(時代)의 명경(名景)을 그린 풍경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감격스럽기만 하다. 시절인연(時節因緣) 불교의 업설과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으로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다. 현대에는 기회와 때가 올 때 어떤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쓰인다.
꽈배기집 사탕 2020.5.10 고아 이틀동안 비가 내리다가 일요일 아침부터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정오가 되자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봄날에 빛까지 너무 좋았는데, 이런 날이면 연례행사처럼 서율이를 데리고 동네 걷기에 나선다. 여우 광장에 갔다가, 그 옆 동산에도 올랐다가 아카시아 향기도 실컷 맡고 다녔고, 버찌 씨를 잔뜩 주워다가 물고기 밥을 준답 시고, 아빠 손을 빌려 왕복으로 세 번이나 여우 광장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오다 가다 거북이 수영하는 모습, 잉어 자맥질하는 모습까지 익숙한 장면이지만, 서율이는 나설 때마다 즐거운가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길래, 길을 조금 돌아오는 대신 꽈배기를 사는 것으로 어렵게 합의했다. 꽈배기를 만들고, 설탕을 묻혀 일회용 봉지에 넣어 내어놓는 과..
카우보이 2020.5.5 옥성 풀마실 목장 처제 내외들과 아이들 총 11명이 모여 목장 체험을 했던 뜻깊은 '어린이 날' 소들의 엄청난 덩치에 겁이나 질겁을 하던 아이들이 어느 새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고, 대화를 나누더니, 구석에 밀려있던 덩치 작은 소의 먹을꺼리에 신경쓰는 세심함을 키울 수 있었던 날.
What's Up? 2020.5.4 "잘 계시는가?" 아침 저녁으로 포행(布行)을 나서는 주지 스님께서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한다. ▒ "새삼스레 생각나서 연락해 보았네" 말을 건네는 상대가 막역지우(莫逆之友)인 듯 보이는 가벼운 농담조의 어투가 계속되는 상대의 물음과 상관없는 자문자답(自問自答)이었지만, 한동안의 통화가 즐거워 보인다. ▒ 행복함 가득찬 공간 속에 머물다간 공기를 닮고 지나간 자리에 진한 찔레꽃 향기가 남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포행(布行) 2019.7.27 도리사 어슴푸레 날 밝을 무렵 스님들의 불경(佛經)소리 너머로 보이는 석등의 옅은 불이 밤 새 내린 비가 무겁게 가라앉힌 숲 속 녹음들 사이로 온기 실린 텁텁한 바람 타고 퍼져나간다. . .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 꽃이 피어나는 봄보다, 녹음 우거진 여름 초입이 더 경치가 좋다는 말인데, 이곳에만 오면 이 말을 체감할 수 있다. 꽤나 오래되어 한 아름이 넘어가는 적송(赤松)이 한가득 둘러쳐진, 이곳 도리사 주변은 스님들이나, 보살님들이 참선(參禪)에서 잠시 벗어나, 포행(布行)을 즐기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 누구라도 이런 날을 일부러라도 찾아 포행을 나선다면 만수우환(萬愁憂患)을 잊을 수 있을법하다.
모란(목단, 牡丹, peony) 2020.4.28 문성 굉장히 많은 수술과 대략 5~6개의 큰 암술이 특징인데, 진한 자주색 엺은 겹 꽃 잎이 매우 매력적이다. ---------------------------------------------------------------------------------------------------------------------------- 올 봄. 때 같지 않게, 차고, 거센 바람의 연속이라서 과수원의 과실들이 냉해를 입은데다가 꽃이 떨어져 울상이라고 할 정도라 한다. . 원래는 암술이 커지기 전에 수술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꽃 분이 가득할때를 노려야 하는데 올해따라 유난 스러운 날씨의 연속이라 오히려, 암술이 커졌을때를 기다렸다가 찍었다. . 워낙 평범한 장면을 싫어하는 취향 때문으로 보면 되..
모란이 예쁜 집 2020.4.28 문성 "예쁘게 핐을때 안 오고, 다 시들었을 때 오노..!" 불규칙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씨름하며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침 이웃집에 계시던 이 댁 어르신께서 익살맞게 한마디 던지신다. 마땅히 꾸밀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어물쩡 거리려니, 한 장 찍어달라며 성급하게 포즈부터 취하는 요량을 보자 하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익숙하다. 모란은 암술이 커지기 전, 수술만 보일 때 찍는 것이 곱고 예쁘며, 꽃 분까지 찍히면 정말 예쁘지만, 올봄에는 거센 바람과 함께 큰 터라 그런 장면은 다음에나 기대해야 할 듯하다. "좀 더 구경하게 가겠습니다." 말을 남기니, "이쁘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 남기시고는 댁 내로 들어선다. "사진 잘 나오면 뽑아서 드리겠습니다." 닫힌 현관문을 ..
겹벚꽃 핀 자리 2020.4 이날, 종일 구름만 잔뜩이다가 3분여 남짓 동안만 해를 볼 수 있었다. 빛이 아주 좋은 날에 골목을 돌아 아주 약간의 오르막으로 눈 길을 주면, 꽃잎에 닿아 부서지며 반짝이는 아주 진한, 다홍색 강렬하게 피어난 겹벚나무를 볼 수 있는데, 길옆 돌무더기에 무심히 앉아 고즈넉한 그 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어디든 더 부러울 곳이 없겠다 싶다. 때마침 한 보살님의 무심하게 그 장면을 마다하고 지나치는 걸음걸이가 행선지를 예감케 해준다.
벚·꽃·마·중 2020.4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내가 일을 마치고 나면 하루가 멀다하고 아파트 주변을 걸었었는데, 순전히 고령 산모에 속했던 아내의 순산을 위해서 되도록 많이 걸으라는 산부인과 측의 권유 때문이었다. . 산책 코스 중에 평소보다 조금만 더 걸어 나가면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겨진 벚나무가 촘촘하게 줄지어 서 있는 그 산책길을 걷게 되는데, 그곳을 걸을 때마다 기대에 찬 감정으로 머릿속에서만 그려왔었던 그 장면이 6년 만에 현실로 담겨졌다. . 매우 벅찬 순간이었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는데, 잔뜩 신나서 뛰어오던 아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벚꽃잎을 보자마자 깨금발 들고, 손을 뻗어 잡아보려 깡충 거리던 그 찰나의 순간이 내가 항상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었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는걸 서율이는 알고 있었을까! 머..
눈 온다 2020.4.1 금오산 눈이 온다. 바람에 실려 나무에 붙어있던 여리디여린 벚꽃 잎이 우수수 바람 따라 휘몰아치는 순간 눈이 내리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봄... 주 중 어느 따스한 날에 녹슬기 직전의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그래 봐야 겨우 지척이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했던 마음이 행복감으로 가득 채워졌었던, 그런, 배부른 날이 되었다.
구제 자동차 2019.11.23 대구 이월드 주변의 화려한 조명 아래 웨건((Wagon) 스타일의 진 초록색 클래식 카의 보닛(Bonnet) 위에 고운 장미꽃이 잘 어울리도록 장식되어있다. 마치 참새 둥지 안에 있는 참새들을 연상케 했는데, 가짜 꽃이긴 했으나, 클래식 카의 전체적인 모양새가 연분홍 장미꽃과 그 주변으로 늘어진 줄기가 조화롭게 너무 잘 어울렸다.
말린 귤 차 2019.12.23 유성 어린이집 아이의 생일 전날 '유성 어린이집'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 했다. 감기 기운에 열까지 있던 터라 아이의 표정이 많이 굳어있어서 내심 걱정했었는데, 작년에도 그랬었지만 당연하다는 듯, 중앙에 위치해 있었고, 춤 동작 또한 틀린 곳 없이 잘 소화 해낸 아이가 대견했다. 도착하자마자 손님들을 위해 마련해놓았던 다과상에서, '말린 귤 차'와 떡 약간을 덜어내어 몸을 녹일 겸하여 마셨는데, 달달하고 따듯한 귤 차와, 조금은 심심한 맛이지만, 쫀득한 떡과 참 잘 어울렸었다.